사랑했던 기억으로
이모부가 한분 계시다
지난 포스팅 언급했던 엄마와 젤위
큰이모는 두분다 남편을 이별하셨고
큰이모는 먼저가신 이모부가 10년 남짓인데
45년 이상 고락 함께 한 배우자 에 대한 ᆢ
그리움과 애증, 연민 ,외로움 ,자식무용 더더 깨달음 등등의 모든 감정플러스에
그럼에도 아직 자식에 대한 사시는 동안의 책임,의무,사명감 등등이 콜라보 되어 규칙적으로 병원을 다니시며 약을 드시고 실낱같은 끈만 붙잡고 멘탈을 챙기시며
내게 하루 서너번씩 전화를 하시며 위로를 주고 받으신다
우리엄마는 ,ᆢ정서에 너무 안맞지만 우울증보단 낫지만 데미지없이 나만
잘먹고 잘살자 식 본인위주로 사고의
체계를 꾸리는 내 입장서 손절 희망 2순위 분이시다
걱정이라면 오로지 본인걱정과
멘탈 무너진 당신의 아들걱정 ,
그것도 맘으로,입으로만 걱정ᆢ
대접도 못받으며 이세상 아들위주로 걱정에,
떠난 남편은. 이미 장례 치르면서 잊은지 오래다 .큰틀에서 보면 엄마도 솔직히 딱하다
아들이 큰 사업 실패를 겪고 하루를 간신히 나고 있는 중증남자우울증이니
누구나 혼자다 인생을 누가 대신 살아주는가 ᆢ
어쩔수가 없다 나역시
나도 심신 미약자다
참을뿐이다
아직 더 봐줘야할 성인이지만
아직은 어린애들
시모, 친모, 늙은 이모
내가 챙겨야할 3母되신다
이분들을 챙기기 위해 나도 버텨 나가는지 모르겠다
정말 손절 하고픈 희망 순위 1위
시모시다
자식을 長考 없이 낳았으니
밥만 간신히 먹여 키운 케이스
산목숨이니 산 케이스
디스용 발언은 진심아닌데 약33년
경험해본 바로 객관화해 그러시다
내 경험으로 받은게 1도 없는지라
(나같은 분이 세상 지천 이겠지만 )
세상살이가 너무 험하게 고단 해
ᆢ지쳐 늦둥이가 고2 정도 시절 인가 ᆢ
나의 고단함을 자식을 부양하느라
대체 이 고생이 왠말인가 , 등등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의 인생 맵등등
신세 한탄 한적이 딱 한번 있었다
그때 평타로 쳐 늘 순둥순둥 한 딸렘이었는데 ᆢ(일등과 꼴등을 오가며
최고 아님 최저 ᆢ개성이
아주 강한 극단의 롤러코스터인 ,
학교 담임샘께 매일 연락이 오던
제오빠와 달리 )학교에서 단 한번 연락이
절대 안오는 평균의 아이콘 늦둥이 딸렘이ᆢ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늘 인내가 일상이던 (그래서 늘 가슴이 아픈 늦둥이)
딸렘이 사춘기 반항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나즈막히 내게 이리 받아치는것 이었다.
"나도 이 힘든세상 굳이 나오고 싶지
않았거든 ᆢ
누가 낳아 달라고 했나?"
맘대로, 임의대로 낳았으면 부모가 일정부분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지 ᆢ"
당시 나이 40대 끝자락 , 50을
들어서던 시기,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던 그시절,
새벽 이슬 같은 그아이가 없었음
버틸수 없었을 그시기 였기에 ᆢ
그아이가 나즈막히 혼잣말 처럼
읊조린 그말을 잊을수가 없는것이다
이미 이아이는 많은 마음아픔
부딪힘에 노출되었다는
뜻이었고 달관자의 톤이었다
그제서야 마치 해머로 한대 탕 맞은듯
현타가 오며ᆢ
그아이에게 뭔가를 크게 한방 먹은듯 ᆢ
절대 사춘기 의 언어로 들리지 않고,
단한마디도 하지 못한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대학부터 자립을 하다시피 했고 ,남표니는 시골서 상경해 주거불안정 , 동가식 서가숙으로 서울서 학업을 했다
남표니 2월 대학졸업후, 3월에 두주먹 만으로
결혼을 강행 했는데 ᆢ
내결혼 당시 주거의 모기지는 시모께 빌린돈 300만원과 큰이모가 빌려주신 천만원!
나의 자금 천만원은 그것조차 작고하신 아버지가 결혼전 가져 가셨고 신혼여행 다녀온 날부터 시모는 빌려주셨다며,
300만원 언제 줄거냐고
매일 당시 시외전화를 하셨었다
남표니 결혼하자마자 사정상 대학원을
진학 했는데 시모님의 첫마디 는
"대학원 학비 못댄다" 였다
아니 진심 내맘은 주시라는것두 아니였고 언급조차 안했는데 스스로 먼저
꺼내시는 말이라고 그러시는 거였다 ,
나는 이제나 저제나 지금껏
그런 멘탈의 소유자는 전무후무이다
매번 연계된 시골분들을 주렁주렁 달고 각종건수로 서울 우리집을 들락 거리시며
당신의 장남 찬양과 우리 모두 다같이 추앙할것을 종용하시며 , 당신 사신세월만
연설 하신다. 지금껏 현재 진행형으로 ᆢ
한달도 거름없는 용돈을 드렸고 ,
현재 진행형 이며
아무도 안하는 보험을 결혼하자 마자
내가 들어드려 보험을 유효적절 활용해
너무 레버리지껏 만땅 활용하셔 이제
나이 연동등 보험 거절까지 되셨고, 부부 직장내 인센적용 성과급 용 의 해외여행까지
내모든 양보로 대신 다보내 드렸었다
최소 7개국 동행기본으로
분기별 종합적인 생필품일체
풀패키지로 보냄, 무조건 서울병원
상경 병원입원후, 퇴원시 추이경과를
보느라 우리집에 계시며
배설물 남기신 이불커버를 삶으며
때론 모셨다
시골에서 누군가 유기하고간 걍쥐 복굴이 ᆢ
생각만으로도 눈물짓게 되는 견공
시모님이 거두시고 키우셨지만 역시나
견생 자체는 역전되지는 못했다
명절방문때 우연히 보니
집도 없이 스치로폼에 두시고
먹던 짠밥에 돼지뼈다귀를 뜯고있던 ᆢ
짠해 넓다란 걍쥐집과 목줄 구충제
사료 까지 보냈지만 제대로 관리 되지 못했다
방치되어 눈까지 적출되는 사고를 당했고
방치되는 걍쥐 복굴이가 너무 불쌍해,
내가 눈물 흘리며, 제발 내게 보내시래도, 안보내셔(당신이 저 개땜에 살아있다는 말도 안되는 샤머니즘과 결탁하신 마음땜에 안보내심)불쌍한 10세 밖에 못산
복굴이는 더살수있는데 , 뒤늦게 포기하셔 ,
작년 5월에야 내가 데려왔으나,
이미 치료시기를 놓쳐
병원 치료하다 우리집 온지 3일만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그때 처음으로 어머니를 흉보고 원망 했었다 .
해도 너무 하시다며ᆢ
객관적으로 그런분ᆢ
사람이던 짐승이던 책임지지
못하실거면 왜 거두시는지 ᆢ
나의 이해는 불 필요겠지만 ᆢ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두 엊그제 전화해 우회로 또
돈얘기를 하신다 . 자식인 남표니 양육하시느라 결혼전 비용처리된 부분을 또또 늘 그렇듯 울그고 울그신다
그 일천한 비용을 들먹거리시며
그때의 돈을 알아주길 바라신다
"자식 인데 돈1원,1전을 거저 못주시나요?"
되받아 치고 싶었지만 ᆢ
대화 안되는분 조용히 전화기를 내려둔다
대단해서가 절대 아니지만 아무튼 대단하신분 ᆢ
돈을 떠나 그맘이 정말이지 아팠다
부모인데 배아파 낳은 자식에게 ᆢ
저럴수 있을지 ᆢ?
내자식에게 나라면 저럴수 있을까?
미국인들은 ,유대인들은 ,자녀양육방식이 저런것일지?
어떤 방식이 자식을 위해,최선일지
나의 혼란에 빠진다
나는 객관화 하여 질문을 하고 또 해본다
남표니는 고아일지 ᆢ
안쓰럽기 까지 하다
그러면서 나는 부모를 목숨 다할때까지 섬겨야하고 내자식대로
돌봐야 하는것인지
모순과 억울함까지 직면 한다
보육원 출신들이 만20세면 세상에 나와야 하는데 자립금이 1000만원이내 인가 라던데
그것으로 요새 세상 자립이 되질 않는다고 ᆢ
그래서 세상살이 포기를 한다고 보고 듣는다
너무 공감이된다
저축을 해도 실질 자산 마이너스인,
벼락거지인 이시대를 나포함. 모두 살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회 문제 이슈화가 되고
많은 단체서 기부를 요청하고 있다
기부문화는 이시대를 공유 하며
정말 많이
더더 확장되어야 하는 화두이다
보육원두 1000만원을 줘 내보낸다는데ᆢᆢᆢ
나는 부모가 ,어른 노릇을 못하는것이
내게 적용되어서기 보다 ,
내부모가 그렇다는것 자체가 평생 슬펐고, 그부분이 내멘탈을 점령하고 나의 결핍으로 이어진것이 아프다 늘 ᆢ
무튼 다른쪽으로 얘기가 삐딱선을 탔지만ᆢ
이모부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평생 몸이 약하셨고 젊은날부터 병치레가
많이 심하 셨던 작고하신, 너무 그립고
인성이 선하신 중간 이모의 남편이시다
대한민국 제일 좋은대학을 졸업하셨고
모르는 이가 없는 대기업의 임원까지
하셨고 , 철없는 어린시절부터,
결혼전 까지 눈이 언제나 싸고
세상을 몰랐던 ,당시의 나는 ,
이모부가 남자 롤 모델및 이상형 이었었다
우연찮게 존함이 남표니의
이름과 성만 다르고 같으시다
자란 환경두 남표니와 매우 흡사하시고
각각 모친의 성향및 추구하는 이미지도 비슷
남표니보다 더 더 못 하실수도 있었겠다
울시모는 재혼은 안하셨으니 ᆢ
할머니 손에서 크셨다 했고 친부 얼굴도 기억없다 하셨으니 ....그리고 키워주신
조모님 장례때 떼굴떼굴 구르며 우셨다고 전해 들었었다
(남표니는 고딩1때 시아버님 작고
나는 시부님을 생전에 뵌적이 없다)
대학시절 남표니 내앞을 얼쩡 거릴때,
이모들이 그랬다. 너두 힘든데 힘든여건을 더더 추가 하지마라고ᆢ 해서 비혼주의자였던 나는ᆢ 나두 ,그런데 이 빈한한 시골 남자를 많이 경계 했지만 오늘날 이결과물이 된건 이모부 영향이 컸는지도 모르겠다
이모부가 그땐 롤 모델 이었기에
마침 이름도 같고
물질이야 ,우리가 열심히
하면 되지 ᆢ 했지만 ᆢ
그런것 만도 정말 아니었고 ᆢ
진솔히 담담히 논하자면
글로벌 급 으로 뜬 연예인 아니고는
이제나 저제나
우리는 완전 서민이었으며 ,
부모의 차이는 늘 그갭을 줄이지
못하고 격차를 벌린다
부모가 뭔가를 안겨도 정신차리지않음
잃고 지키지 못하는것이 현재의 구조이다
무엇보다 너덜거리는 멘탈
자라온지역 정서간의 간극은
언제나,늘 ,
무엇으로도 메꾸어지기가 요원하다
6.25 둥이셨던 이모는 몸이 병약해
단하루도 안빠지고, 무능력하지만
사람은 좋은, 울아버지집 근처에
사시며, 엄마를 의지해 사셨고,
이모부 출근하면 어린 취학전 이종사촌들을 간신히 이고지고 끌고 ,매일 출근
조,중.석 식은 이모부 까지 퇴근후 합류 해결 하셨었다
염치가 없어서 가 아니라 그만큼 30~40키로대 몸매로 몸이 약하셔
바로 위 엄마를 의지하셨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찌 살았을지 싶게
더 기막힌건
방한칸은 외삼촌이 기거하셨다
해서 이세상 제일 좋았던 외할머니는
우리집서 모시다 돌아가셨다
당시 나 중딩시절전후 였고 사춘기를
보내며. 허구헌날 바글바글 집구석
인상을 쓰긴 했지만 촌수 떠나
정은 많이 들수밖에 없는 구조 였었다
이모부께 영어 ,삼촌께 수학 토너먼트로 개인지도두 잠시 받으며 ᆢ
(빠가사리는 영원 하다 ;;;;;)
관계 떠나 가족 이었다
후로 미국,홍콩 지역 주재원으로 발령이 나시기도 하며 그 복잡생활이 자연스레 끝났더랬다
중간중간 귀국 후,회사생활도 이어가시며 아무튼 해외와 국내를 끊임없이 오가시며
고생 많이 하셨더랬다
나 대학생일때 대학 졸업후
주부초짜부터 큰아이가 중딩일 시기 까지
왕래 많이 교류하며 친했고,
나의 대학 졸업사진 이모가 있고,
나의 결혼식 , 남표니의 대학원 졸업사진
에두 이모가 있다
아버지가 작고하신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약하셨던 이모는 나날이 악화되어
매일 호흡기를 끼고 주무시더니 결국
아버지 다음으로 연달아 작고 하셨다
환갑이 미처 못되신 나이에ᆢ
그다음 큰이모부, 그다음 큰외삼촌,
순서로
15년두 더 된얘기ᆢ 세상은 많이 변했고
우리는 많이 그리워했지만 잊어가기도 하며 ᆢ
이모부는 은퇴후 자신의 마지막 관심사로
강화에 보유하셨던 땅에
건물을 짓고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시고
예쁘고 규모가 큰 카페를 여셨다

새 반려자도 맞으셨다는 소식과 함께
우리는 더 소원해졌다
순정파신줄 알았는데ᆢ
보는 눈이 쌌던 나로서는
큰 충격이었고 ,
엄마와 큰이모는 아주 가끔 카페를 방문하시는거 같았으며, 나는 가지 않았다
명절때 마다 그래두 과일상자를 보냈다
천사 같았던
이모를 추모하며ᆢ
이모에 대한 나의 도리 이자, 내 자세였다
너무나 일생 병약했지만 코믹하고
유쾌하며 내게 성경을 가르치고 진리를 전해주셨던,내가 젊고 돈을 좀벌땐 내
등을쳐 활용해 맛있는것두 얻어 드시던 ;;;;
태생이 천사인 내이모를 너무 그리워 하며ᆢ
그러던 며칠전 제일 큰 왕 이모께서 뜨문으로 왕래하던 이모부께 내소식을 전하셨는지, 이모부와 나는 톡을 나누게 되었고 무심히 한번 다녀가시라 하며,
1월중에 오신다는 인삿말을 했는데 작심하신듯 다녀가신다 연락이 오셨다 .
진심이었지만 설마 오시려나 싶었는데 ,
살짝 어색은 하니 큰이모와 엄마를
같이 불렀고 엊그제 먼걸음인데
울집에 진짜 오셨다 .
한참전에 다시 맞으신분을 기회 되어
뵌적은 있지만 근 10년만에 모두 재회한듯하다. 일단 많이 반가왔다
어린시절 소설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소설을 재미로 매일 기다리며 읽은적이 있다
재가한 아버지와 그옆의 새어머니를
마주하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뒤돌아서서는 어깨가 흔들리는걸 막을수 없었다는,
소설 내용의 주제와 비껴간 에피소드 ᆢ 내용
내머릿속 기억 저장소 어디쯤 있었는지
갑자기 갑툭튀로 튀어져 나온다
나는 어깨까지 들썩이진 않았지만 ,ᆢ
중고등학교 입학시 내교복을 맞춰주셨던 분, 내 대학입학금이 기한내 없었을때
이모가 대학으로 택시타고 달려와
등록금을 내주러 왔던일 , 졸업하고
일을 하던 1년차 내인생 정점찍던 시기 , 이모부께서 둘째 사촌동생 과
홍콩의 좁은 아파트서 주재원 시절시
둘이 사셨는데, 철없어 민폐인줄도 모르고 비행기표만 달랑들고 방문해
이모부가 홍콩공항으로 사촌동생과 픽업
나와 주셔 홍콩일주하며 ,홍콩 맥도날드서 햄버거를 같이 까먹으며 배로 마카오까지 재미나게 투어시켜 주셨던일, 미국 계시던 때는 ,나의 결혼식에 명품가방과 함께
비행기값까지 쓰시며 이모와 동생을 보내셨던 일 등등이 추억의 퍼즐로 마구 쏟아지는데 자꾸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이 었다 .
젊고 참,좋았던 시절들 ᆢ
모두가 계셨던 시절들 ᆢ
이모의 딸들
사촌동생들은 국제 변호사가 되어
각각 홍콩과 미국에 흩어져 살고 있다
평생 병약한 이모의 병수발로 고독과
고단한 삶을 사신분ᆢ자식들도 어쩔수
없이 자주 못보시며, 늘 외로운분이시기에
늦게 소탈하고 ,건강한 분 만나
함께 운동하시며 사시니
그저 감사하자 ᆢ
하지만 ᆢ
그럼에도
마음이 아픈건
어쩔수가 없었다 .
손수 밥을 지어
차려드리는게 마땅 하지만 ᆢ
모든 여건이 따라주지 않기에
집근처 나름 유명 음식점에서 식사를
대접했다


이후ᆢ

집으로 잠시 모셨다
기질이 워낙 몸도 빠르시고
성격이 급한 분이시기에 ,주저함 없이
당신 딸네집 들어서신것 마냥
집안을 ,성큼성큼 둘러보신다.
그뒷모습에 내 아버지도 그랬을거 같은 분위기가 오버랩 되어진다
뜨거운 생강차 ,이모부의 부인을 입에
단련이 안되어 어색하지만,
나는 이모님이라 부르며 ,그분의 기호에
따라 애플 시나몬을 내놓으며 잠시
이런저런 일상을 나눈다
이모부의 일생 아무것도 안한 생모께서는
101세로 아직도 살아계셔 요양원에
계신데 그비용이 매달 95만원이라 하신다
"그비용을 이모부 혼자 대시는거예요?"
나의입이 주체가 안되어 다이렉트로 나간다
평생이 짠하신분 ᆢ
울 시모가 90이시고 이모부와
우리 부부나이차가 20살두 더나는데
이모부 생모님과 울시모나이차이가
왜 10살밖에 안나지 ??
시답잖은 의구심이 살짝일었지만 이내
대화는
내가 요즘 공부해보고 싶어 시작한
특수교육학 공부 얘기,학교에 다시
지원해본 얘기,
그리고 생존을 위해 늘 보고 있는
주식 얘기 까지 ᆢ
당신의 이름을 언급하며(울남표니다)
요즘 뭐하냐고.? 최근 근황을 체크하신다
이모가 살아 있음 매일 공유되었을 얘기들ᆢ
"만1년전, 작년말에 부행장 못되어,
결국 더럽다 며 사표 던졌잖아요 "
"어느 기업에서 모셔간다고?는 가서는
이제 1년 되었지만 마지못해
죽지못해 ,다니며,매일 괴로워 하고,
오늘낼 ,오늘낼 하고 파리목숨 이네요"
나는 짐짓 남얘기 하듯 괜찮은척 ,쿨한척
하며 무심히 질문에 답한다
"이럴줄 알았음 저라두 진짜 퇴사 안할걸 후회가 너무 만땅이고요 "
담담히 필터링 없이. ᆢ
속이 깊으신 분은 언제나 먼저
물으시곤 말이 없으시다
내가 이모님이라고 칭해드린 어색한
이모님은 꾸밈없는 소탈하신분같다
색상이 예뻐 안버리고 둔
내집에 놓여진 콜드블루 커피 껍질을
보시고 이게 뭐냐고 물으신다


"콜드블루 커피예요ᆢ
좀 드릴까요?
연말선물로 지인들께 나눔하려고 사둔 건데
지인들을 못만나 아직 몇개 있네요 . "
괜찮다고 사양하시더니
몇개의 여분을 실물로 보여드리니
"그래 ?
그럼줘 "하신다
그외 내가 쓰는 스테디 셀러 완판의 가성비 팩트를 드리고 남녀 내의를 챙겨드렸다

이제 나이드니 우리 부부도 내의를
꺼내 입는다
강화도두 추울거 같기에ᆢ
내이모를 드리면 구두쇠성향에 그저 받는거라면 조아주금 호들갑 만렙으로 진심으로 감사를 천만번 표했을 그분ᆢ
이모생각에
눈시울이 자꾸 새빨개진다
다음시간을 기약하며 헤어지고보니 ,
울집 작은애에게 슬그머니 용돈을 두둑히
주고 가셨다고 했다
자리를 시종 함께한
( 엄마 눈병 났다고 불참)
큰이모를 모셔다 드리고
다음날 이모는 전화를 하셨다
뭐하러 돈을 쓰고, 뭐하러 엉뚱한 분에게 마음의선물을 하냐,너만 딱하고
너만 애쓴다는 ᆢ
물론 큰이모는 내편이시지만,
이모두 그저 미안한 인사 치레시다
다음날 이모부는 톡을 하셨다

사랑했던 기억으로 ᆢ
아름다운 기억으로 ᆢ
아프게 ᆢ
나누고 싶을 뿐이다
그시절은 오지않고
몸부림 쳐봐야
아쉬운 삶을 살다간
바보 이모두 돌아오지 않는다
남은분들의 행복을 기도 해볼뿐이다
2인조 남성듀오 아침.
싱어 유정연님의 노래
사랑했던 기억으로 ᆢ
그시절 내가 테잎을 늘어지게
들으며 출퇴근을 함께한 노래
오랫만에 유트브로 듣는다
https://youtu.be/Q3QKRXVE3lU?si=SPcTrlaAXH0bv6Dg
사랑했던 기억으로
Provided to YouTube by Danal Entertainment사랑했던 기억으로 · morning아침 1집℗ 1992 Danal EntertainmentReleased on: 1992-02-10Auto-generated by YouTube.
www.youtube.com
혼자로 놓여 나니
그시절 들이 너무 행복 했어서
너무 그리운 분들이어서 ᆢ
눈물이 나는건 어쩔수 없다
사랑했던 그기억으로
그시너지로 오늘을 극복 해본다